누구나 젊었던 적은 있어도 늙은 적은 없다. 늙음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경험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늙음의 단계에서 젊은이보다 더 밝게 빛을 낸다.

지난 27일 만난 대한노인회 이심(76) 회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기업의 젊은 CEO들이 풍기는 에너지와 정열이 감지됐다. 그는“변해야 한다”“뛰어야 한다” “안 될 게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고성능 엔진 같은 사람이었다.

대한노인회는 최근‘통일과 나눔 펀드’에 전국 72만여노인들을 동참시켰다. 전국 회원 293만명 가운데 4분의 1 가량이 단 46일 만에 8억2309만원을 모았다. 한 단체의기부자 수로는 대한민국 사상 최다 기록이다. 대한노인회는 또 지난 5월“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65세)보다 상향조정하자”는 제안을 해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남들은‘해주겠다’하지만 나는‘합시다’한다” 20대들이 재잘대는 숙명여대 앞을 지나 서울 효창공원에 들어서니 새들이 지저귀는 숲길 끝에 대한노인회 건물이 있었다. 회장실에는 책상과 긴 회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이 회장의 책상은‘ㄷ’자 모양이었다. 그는“책상왼쪽에서는 컴퓨터를 쓰고 가운데서는 회의 주재, 오른쪽에서는 결재를 한다”며“전임 회장이 쓰던 응접세트는 치워버렸다”고 했다.

—성함(이심₩굃沁)이 본명이십니까.

“‘물이 땅에 스며들어 만물을 무성하게 한다’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죠. 아마도 대한노인회 일을 하라고 지어주신 모양입니다.”

그는 2010년 제15대 회장에 취임한 뒤 2대째 연임 중이다. 작년 회장 선거는 대한노인회 선거 사상 최고의 열기속에서 치러졌다. 국회의원 4선, 3선, 2선 의원 출신 인사들이 도전장을 내 과열 분위기까지 형성됐다. 이 회장은이런 후보들을 포함한 네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61.7%라는 사상 최다 득표율로 재선됐다.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노인회장은 기관장 하셨던 분들이 많이 맡았지요. 저는 대의원들에게‘쥐 잡는 게 고양이입니까, 호랑이입니까? 나같이 뛰어다닐 사람이 해야 합니다. 일할 사람을 뽑아야지요’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후보들은‘내가 회장이 되면 당신한테 이런저런 걸 해주겠소’라고

말했고 나는‘내가 회장이 되면 이런저런 걸 합시다’라고 했어요. 노인들 불쌍하게 생각하고 잘 해준다면 좋아할 줄 아는데 천만에요. 자존심을 세워줘야 좋아해요. 정치인들이 늘‘어르신들 해온 것에 비하면 대접이 형편없습니다. 우리를 지지해 주십시오’하는데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지. 그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얘깁니까.”

—이를테면 어떤 것을 하자고 했습니까.

“부양받는 노인보다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되자고 했지요. 노인이 부양의 대상이라면 현재 10명 중 1명이 부양받는 시대인데 앞으로 10명 중 3명, 5명이 부양받는 초고령 사회가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라가 망하는 거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평생 현역사회,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건 불가능하잖습니까.

“정신적으로 일하면 되죠. 영국 속담에‘노인이 지켜만 봐도 범죄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어요.”

—회장님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거울을 보면 노인이 맞긴 맞는데 내가 사고(思考)하는 건 노인이라고 할 수 없죠.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고 하면 활동도 안 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을뜻하는데 그것부터 잘못됐어요. 노인(걛人)은 늙은 사람이란 뜻인데 늙으면 다 얻어먹고 부양받아야 합니까? 어디 강연에 가서‘어르신들, 부양받는 노인이 되고 싶습니까,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되고 싶습니까’하고 물으면 다들‘책임요, 책임!’한단 말이죠.”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구부정하게 걸으며“부양받는 노인이라고 하면 이렇게 걷는다”며“그런데 책임지는 노인이라고 하면 이렇게 자세가 달라진다”며 허리를 쭉 펴고 걸어 보였다. 그는“말의 차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엄청나게 다르다”고 했다.

통일나눔 펀드 참여노인, 연말 100만명 될 것

—통일과 나눔 재단 기부는 책임지는 노인의 실천이었군요.

“우리가 올해 초‘나눔과 베풂을 통한 통일 한국시대’라는 표어를 내걸었어요. 세계에 있는 외국 국적 한인 노인들이 북한을 왕래하면서 교류를 하고 통일의 기초를 쌓자는 거죠. DMZ에 평화공원 만들자는 아이디어, 참 좋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생태공원이 되겠죠. 남북한 모두 관광수입을 올릴 거고요. 그러고 있던 차에‘통일과 나눔 재단’소식을 접한 겁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에 72만명을 모을 수 있었죠. 사실 그새 4000명 더 늘었어요.m연말까지 100만명은 될 겁니다.”

그때 사진기자가 이 회장에게“의자 등받이가 높아서머리가 걸리니 등받이 낮은 의자로 바꿔 앉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 회장은“나는 좋아요. 사실 이런 의자가 나한테 어울려. 머리 기대는 의자는 나하고 안 맞아”라며 일어섰다.

—처음 하신 일이 노인 일자리 만드는 것이었죠.

“노인이 일자리를 가지면 4고(苦)가 해결돼요. 건강문제, 생활고, 자존감 상실, 그리고 외로움. 노인이 노인을 10시간 돌봐주면 10만원을 주는‘노노케어’를 시작했는데 굉장히 효과가 좋아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남을위해 뭔가 해본 적 없는 이들이 보람을 느끼는 거죠. 10만원 수당 받고 독거노인한테 50만원을 쓴다니까요.”

—노인들이 중고등학교에서 효(孝) 교육도 시킨다고 들었습니다.

“효 교육을 옛날식으로 하면 다 실패해요.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휴대폰 다 갖고 있죠? 다 꺼내세요. 전부 어머니한테 문자 보내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답장 온 사람 손 드세요. 뭐라고 왔어요? 너 미쳤니? 그다음은요? 너 왜 그러니? 세 번째 학생은? 그래. 나도 너를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부모가 부모다워야 자식이효도하는 겁니다. 노인이 노인다워야 대접을 받는 것이죠. 우리 회원들 그런 강의 해주고 강사료 1만원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