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있어 장기요양 2등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모시고 재택근무를 하는 김연경씨(여·42)는 갑작스레 외국 출장을 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김 씨는 어머니를 단기보호시설에 입소시키려 방문했으나, 낯선 환경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지방에 사는 남동생에게 출장기간 어머니를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남매간 심각한 갈등이 생겼고 찜찜한 마음으로 출장을 다녀와야 했다.

▲ 복지부가 중증 치매환자를 위해 이르면 9월부터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가운데, 치매 예방과 조기 검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치매를 예방하려면 걷기·체조 등 적당한 운동과 함께 신문 읽기, 독서 등 지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9월 열린 치매극복의 날 행사에서 한 어르신이 신문을 활용한 치매 극복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방문요양 하루 이용료 2만원… 연간 최대 6일간 서비스
치매환자 64만여명… 증상 의심땐 속히 치매검진 받아야

김 씨의 경우처럼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출장을 가거나 여행 등 일시적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온종일 집을 비워야 할 때,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를 연간 최대 6일간 제공하는 제도가 이르면 9월부터 도입된다.
보건복지부는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 실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치매가족 지원방안’을 제2차 장기요양위원회에서 보고·심의했다고 4월 27일 밝혔다. 복지부는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가 5월중 개정되는 대로 9월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그동안 치매환자 가족의 휴식을 돕기 위해 환자를 단기보호시설에 입소시키는 방식의 ‘치매가족 휴가제’를 시행했으나 가정을 떠나기 꺼려하는 치매 어르신들의 특성을 고려해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발표한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따르면,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는 2017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는 1, 2등급 장기요양 치매 수급자가 대상이다.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폭언·폭행을 하거나 ▶대소변을 벽에 바르는 등 8개 항목 중 하나에 해당하는 중증 치매환자 약 8400명이 대상이다. 기존에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 시간이 최대 4시간 정도로 정해져 있어 보호자들이 집을 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를 신청하면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보호자 대신 치매 수급자를 돌본다. 유사시 응급상황 등에 대비해 서비스 기간 중 간호사가 1회 이상 방문하도록 했다.
방문요양서비스의 하루 이용료는 총 18만3000원이지만 이용자는 1만9570원만 내면 되고 나머지 16만3430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연간 최대한도인 6일을 모두 이용할 경우 이용자 본인부담금은 11만7420원이다.
복지부는 또 5등급(치매특별등급) 수급자에게만 제공되던 ‘인지자극 프로그램’을 1~4등급 치매수급자에게도 본인이 원하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인지자극 프로그램’은 회상훈련이나 미술요법을 통해 인지기능을 유지·자극할 수 있는 활동을 말한다.
정부는 이밖에 올해 7월부터 노인요양원에 치매전담실을 설치하고, 내년부터 치매가족상담 수가를 신설하는 등 치매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치매인구=치매는 퇴행성 뇌질환 또는 뇌혈관계 질환 등으로 기억력·언어능력·판단력 등의 인지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다발성 장애를 뜻한다.
치매는 나이가 들수록 발병이 증가하고 연령별 유병률도 올라간다. 대개 85세 이상에서는 4명 중 1명, 90세 이상에서는 3명 중 1명 정도가 치매 환자이다.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의 경우 65세 이상에서 발병이 증가하고 5년마다 약 두 배씩 증가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64만8000명에 이른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662만4000명임을 감안하면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치매 인구는 10년 후인 2025년에는 100만명, 2050년에는 270만명으로 늘어 중풍, 암에 이어 가장 무서운 사회적 질병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그러나 현재 전체 치매노인 인구의 30%는 치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 진료인원은 45만9000명으로 약 19만명의 치매환자가 병원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다.

◇치매 의심 땐 즉시 검사를=만약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면 초기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 또 시간과 장소를 혼동하거나 물건을 둔 곳이 기억나지 않을 때,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자주 내는 등 기분이나 행동, 성격에 심한 변화가 올 때도 마찬가지다.
흔히 초기 치매는 노화와 함께 오는 건망증과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나이 탓으로 돌리기 쉬운데, 약 10~15%의 치매는 초기에 진료를 시작하면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회복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조기검진을 통해 증상 완화 및 지연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현대의학으로도 한번 걸린 치매를 완치시킬 수는 없지만 적절한 관리를 통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 의심 증상이 발견되면, 곧바로 치매 검진을 받아야 한다. 치매 검진은 신경학적 검사, 간이선별검사, 신경심리검사, 뇌영상 검사 등으로 이뤄진다. 치매검사는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든지 보건소에서 무료로 선별검사(간이정신상태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 검사를 통해 인지기능저하자로 판단이 된다면 추가로 거점병원에서 신경인지검사, 전문의 진료 등의 진단검사와 혈액 검사, 뇌 영상 검사 등 감별검사를 받게 되는데 전국가구 평균소득 100% 이하(지난해 4인 가구 기준 484만원)인 경우엔 정밀검진 비용이 일부 지원된다.
치매 확진을 받은 후에는 증상에 따라 인지치료 또는 약물치료를 받게 된다. 정부는 치매치료제를 복용 중인 치매환자의 경우 소득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에 한정해 월 3만원(연 36만원)의 치매치료 관리비(진료비‧약제비)도 지원해주고 있다.
치매 예방 활동도 중요하다. 뇌 활동을 활발히 하고 기억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독서와 신문 읽기, 외국어 공부 등을 통해 뇌에 지적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걷기나 체조 등 신체활동을 통해 인지능력과 지각능력을 유지·향상시킬 수 있다.
연병길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억력 감퇴나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 나이 탓으로 여겨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가 많다”며 “기억력 저하나 인지장애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경우 치매선별검사로 치매 가능성을 체크하고,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