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군 함평공용터미널에서 차로 10분 거리엔 ‘미륵할머니’ 제당으로 유명한 아차마을이 있다. 대동면 덕산리에 위치한 이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기자가 방문한 7월 26일엔 튼실한 푸른 벼가 들녘을 가득 채운 채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로 이어지는 100여m의 진입로에는 주민들이 조성해 놓은 국화꽃 화분들로 빼곡했다. 가을엔 노란색 꽃들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이 길이 끝나자 보호수인 팽나무와 정자가 함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 전남 함평군 대동면 아차마을이 3년 간 진행된 ‘농촌건강장수마을 육성사업’을 통해 산뜻한 벽화로 채색되고 주민들의 화합도가 높아지는 등 발전을 이루어냈다. 사진은 마을 벽화 앞에서 주민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계서 경로당회장(오른쪽 첫째)과 김진국 이장(오른쪽 두번째).

정자 중심 43가구 옹기종기… 3년간 환경개선 통해 ‘유명한 마을’ 변신
노인회·부녀회·청년회 합심… 고사리·달래 공동경작, 마을경비로 써

90년 넘게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된 정자는 손때가 묻어 기둥을 비롯해 나무들이 반들반들하다. 이날도 10여명의 주민들이 정자에 앉아 수박을 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젊은 축은 마을 이장과 청년회 총무가 전부였다. 주민의 30%가 70대 이상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정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43가구의 집들이 늘어섰다. 특기할만한 점은 집 담벼락에 나무꾼, 우물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정자 바로 옆,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 사무실, 경로당으로 사용되는 마을회관의 벽도 함평군의 상징인 나비 등을 표현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 마을 벽화들이 참 예쁘죠?” 김진국(59) 아차마을 이장이 벽화를 자랑하며 기자를 반겼다.
아차마을은 2013년 ‘농촌건강장수마을 육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함평군 농업기술센터로부터 3년간 총 1억5000만원(연 5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그 동안 벽화, 국화꽃길 조성, 마을 뒷산 산책로(1.6km) 정비 등 대대적인 환경개선 작업을 펼쳤는데, 그 중 벽화에 가장 큰 비용을 들였다.
김진국 이장은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마을 대부분이 벽화작업을 실시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대학생 등이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 마을은 질 좋은 그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미술 전문가를 초청해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벽화를 입은 집들 대문엔 우편함 기능을 겸하는 커다란 문패가 걸려 있다. 문패의 대부분을 그림이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이름과 주소는 오른쪽 아래에 조그맣게 쓰여 있다.
아차마을은 환경개선 사업과 함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중 미술 프로그램 시간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에 착안해 주민들이 그린 그림을 평생 소장할 수 있도록 문패에 담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을 찍은 사진으론 마을달력을 만들었다. 지난해엔 이 2개의 디자인을 특허 출원해 마을 홍보에도 활용했다.

▲ 집에 설치된 문패우체통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차마을 한익순 어르신.

한익순(90) 어르신은 문패 앞에서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문패에는 분홍색, 초록색 등으로 표현한 국화꽃과 나비 등이 담겨있다.
한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매주 2회씩 진행된 미술 교육은 꼭 참석했다”며 “서툴지만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이 문패로 만들어진다니 신기하고 기뻤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김거복 부녀회장(72)이 회원들을 이끌고 마을 가운데 고사리, 달래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부녀회는 농한기 때 각 가정에서 소일거리로 하던 고사리, 달래 수확·판매 사업을 마을 소득사업으로 확대했다.
김거복 부녀회장은 “고사리는 4월 중순~6월 초, 달래는 12월~1월 초에 수확해 도매시장 중개인에게 판매한다”며 “이를 통해 매년 700만원 가량의 소득을 얻어 마을 운영비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인회는 마을 부수입 작업을 장려한다. 부녀회원들이 비닐하우스로 떠난 후 이계서 경로당회장(82)이 청년회원들과 함께 꽃게잡이 통발 작업 재료들을 마을회관에 쌓아놓는다. 이윽고, 정자에 있던 어르신들이 작업 재료를 하나 둘 챙겨 집으로 향했다.

꽃게잡이 통발 작업은 지난해 12월 동함평 산업단지에 들어온 ‘금강물산’이 마을에 일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통발 한 개당 받는 보수는 1500원.
이계서 경로당회장은 “요즘 주민들은 통발을 만들어 받은 보수로 전기·수도세 등 공과금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 작업이 많아 치매예방에도 좋기 때문에 이 작업을 경로당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하도록 권한다”고 설명했다.
2년 전부터 대한노인회 함평군지회를 이끄는 박희의 지회장(74)은 “우리 관내 아차마을이 농촌건강장수마을로서 전국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3년간 내외부적으로 혁신한 아차마을. 이 마을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 참여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복을 주는 미륵할머니’를 사업명으로 선정해 신청한 상태이다.
아차마을은 조선 후기 경부터 ‘미륵할머니’라고 불리는 석상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김진국 이장은 “주민들이 똘똘 뭉치게 된 것이 사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며 “이후에도 사업의 영향이 지속되는 전남 최고의 장수마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차마을의 유래
조선 후기 경, 관아에서는 나팔을 불어 고을에 소식을 전했다. 이를 가장 가까운 마을이 듣고 다음 마을로 차례차례 나팔을 불어 알렸다고 한다. 당시 아차마을은 관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관계로, 관청이란 뜻의 ‘衙’(아)와 두 번째라는 뜻의 ‘次’(차)를 합쳐 아차동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