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쌍문동 신축빌라촌에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유독 한 건물이 눈에 띈다. 평일 낮이라 마을엔 행인도 적고 조용했지만 지난 6월 문을 연 쌍우경로당 앞은 달랐다. 많은 노인들이 식사 후 앞마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몸이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탄 임명숙(여‧75‧가명) 어르신이 나타나 휠체어를 문앞에 세우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이곳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도록 설계된 경로당이었다. 임 어르신은 “예전 경로당은 문턱이 높아 이용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경로당에 오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 최근 전국 지자체에서 경로당을 신축할 때 노인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유니버설 디자인, 패시브 공법 등 최신 건축기술을 적용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지상 1층을 뻥 뚫는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부산 사하구 무지개경로당(사진 왼쪽)과 노인에게 편리하게 설계된 쌍우경로당의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서울 쌍문동 쌍우경로당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집보다 더 좋아”
부산 사하 무지개경로당 지상 1층 뻥뚫어 주민에 이동 통로 제공

최근 전국 지자체별로 노후화된 경로당을 신축하고 나선 가운데 최신 건축 기술인 유니버설 디자인과 패시브 공법, 필로티 구조 등을 적용해 노인들이 보다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한 경로당들이 주목받고 있다.
도봉구에서 관리하는 쌍우경로당은 신축되기 전까지 관내에서 가장 오래돼 회원들이 많은 불편함을 겪었다. 건물의 노후화로 공기질이 떨어지고 냄새가 심한 편이어서 어르신들이 방문을 꺼릴 정도였다. 또 냉난방이 잘 되지 않아 겨울에는 회원들이 각자 집에서 이불을 잔뜩 짊어지고 올 정도였다.
회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대한노인회 도봉구지회에서는 지속적으로 구청에 건의를 했고 구청은 지난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으로 4억원을 받아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공사를 진행했다.
지상 2층, 연면적 127.48㎡로 지어진 쌍우경로당이 눈에 띄는 이유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건물 진입로에 경사로를 설치한 것이다. 서울시의회에서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조례안’을 제정하고 경기‧전북‧제주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가 유니버설디자인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마련하고 나서면서 현재 신축되는 건물에 대부분 적용되고 있다.
쌍우경로당 역시 마찬가지다. 1층 할머니방, 2층 할아버지방 및 다목적실 등 건물 전체 바닥은 미끄럼을 방지하는 매트로 마감했고 계단 양쪽에는 핸드레일(계단 손잡이)을 설치해 이동시 낙상사고를 예방했다. 1층 여자화장실과 2층 남자화장실 역시 장애인용으로 제작했고 천장을 높게 설계해 공기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공기질을 높였다. 시각장애를 가진 회원은 없지만 미래를 위해 경로당 내부 곳곳에 점자표지판을 설치해뒀다. 이밖에 에너지효율 1등급 가전제품과 절수기 등을 설치해 에너지 낭비도 막았다. 회원들의 반응도 좋다. 집보다 좋아진 경로당 환경에 40여명의 회원 대부분이 하루에 한 번씩은 경로당을 방문할 정도. 이날도 34도를 웃도는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회원이 방문해 친목을 다졌다. 또 다른 효과는 회원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봉환(75) 회장은 “기존 경로당에서는 청소를 서로 미뤘지만 현재는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면서 항상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두중 도봉구지회장은 “노후화된 경로당을 재건축해 노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사하구 장림1동 무지개경로당은 지역 주민을 배려한 구조로 지어져 주목받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골목에 지어진 무지개경로당은 지상 1층을 기둥만 세우고 사방을 뚫어놓은 필로티 구조로 설계했다. 무지개경로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양쪽 골목길을 오가려면 빙 돌아서 가야했지만 지상 1층이 뻥 뚫려 통행로가 제공되면서 이러한 주민의 불편이 해소된 것이다.
또 3억4500만원에 예산으로 지어진 무지개경로당은 2층은 할머니방, 3층은 할아버지방으로 꾸며졌는데 옥상에는 고추와 열무 등을 기를 수 있는 텃밭이 설치돼 주민들과 함께 꾸밀 수 있는 녹색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경로당 회원인 최중석(76) 어르신은 “주민들의 경로당 방문이 자연스럽게 늘면서 마을 사랑방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친환경 공공건축으로 지어지는 곳도 있다. 이달 첫 삽을 뜬 충남 아산시 문방4리경로당은 패시브(passive) 공법을 적용해 제로에너지를 표방하고 나섰다.
패시브 공법은 에너지손실을 극소화하고 단열 성능을 높혀 난방을 하지 않고도 겨울을 날 수 있는 건축 설계공법이다. 1980년대 독일에서 개발됐는데 건물을 고단열·고기밀로 설계하고, 열교환 환기장치를 이용해 버려지는 열을 철저히 회수함으로써 난방비를 줄였다. 사람의 체온이나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열까지 놓치지 않고 가둬 에너지로 활용하는 건축이다. 오는 10월말 준공 예정인 문방4리경로당은 여기에 태양광을 설치해 전기료를 0원에 가깝게 만들 예정이다.
아산시 관계자는 “건립 후 실내·외 온·습도 모니터링과 전력사용량 조사, 열화상카메라 촬영 등의 에너지 자료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관내 신축경로당에 패시브 공법을 지속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