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받는 것보다 노인들의 방문을 환영해주는 점이 더 좋아요”
지난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구청 앞 유성용베이커리에서 만난 김운기(72) 어르신은 갓 구워져 나온 식빵과 갖은 빵을 구입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달리 이틀 전 발급한 백세카드 덕분에 전체 빵 값의 5%를 할인받게 된 것이다. 김 어르신은 “앞으로는 백세카드 제휴업소 위주로 식당, 미용실, 안경점 등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서울 영등포구와 제휴를 맺고 어르신들에게 빵값을 할인해주는 한 제과점의 모습.

영등포구선 백세카드 발행… 식당‧미용실 등 최대 50% 할인
“할인 덕분에 노인 고객 몰려 매출에 도움” 참여업소도 반색
서울 영등포구를 비롯해 강남구, 종로구 등에서 시행하는 일명 ‘어르신 할인제도’가 지역 노인들의 지출 부담을 덜어주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백세카드’, ‘효사랑 업소’ 등 지역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지자체와 제휴를 맺은 업소에서 65세 이상 노인(일부지역 70세)에게 할인혜택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년여의 준비기간 끝에 10월 1일부터 시작한 영등포구의 백세카드 사업은 제도 시행 일주일 만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용절차는 간단하다.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신분증과 함께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면 ‘백세카드’와 함께 400여개의 제휴업소(으뜸업소 현판 부착)를 소개한 안내책자를 받을 수 있다. 이를 가지고 해당 업소를 방문하면 책자에 표시된 할인율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체별로 적게는 5%, 많게는 50%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 식당, 미용실, 목욕탕, 안경점, 약국, 꽃집 등 대부분의 업종에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건수와 금액도 제한이 없어 으뜸업소 현판이 붙은 곳이라면 언제든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신분증만 제시하면 되는 타 지자체와 달리 백세카드를 발급하는 이유는 어르신들의 이용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사업 시행 전부터 영등포구청은 대한노인회 영등포지회 등 어르신들과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 청취한 내용 가운데는 카드를 발급해야 어르신 할인제도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를 구청에서 반영해 백세카드를 발급하게 된 것.
영등포구청 어르신복지과 정지원 재가복지팀장은 “어르신들이 할인제도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으뜸업소를 소개한 안내책자와 함께 백세카드를 발급하면서 분실방지를 위한 목걸이케이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원 대한노인회 영등포지회장은 “백세카드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혜택을 늘려달라는 목소리를 구청에서 귀기울여 탄생한 것”이라면서 “타 지역에서도 이러한 제도가 늘어나 많은 노인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여업소의 반응도 좋다.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할인혜택을 받기 위해 찾는 고객이 평소보다 늘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유성용베이커리 유성용(51) 대표는 “하루에 방문하는 노인 고객이 많지 않았는데 사업 시행 후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봉사하는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매출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강남구 개포 주공아파트1단지에 위치한 미용실 ‘헤어스케치’는 강남구에서 시행하는 ‘효사랑 업소’에 제휴업체로 참여하면서 매출이 증가한 대표적인 사례다. 8㎡(5.5평)의 작은 공간에 미용의자도 1개에 불과하지만 2~3명씩 대기하는 건 기본일 정도이다.
강남구 ‘효사랑 업소’는 2013년 12월 일반음식점 40개소로 시작해 현재 일반음식점 220개소, 이·미용업소 75개소로 늘었다. 이용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높인 반면 할인폭은 30％로 큰 편이다.
이로 인해 미용실에선 4만원인 일반 파마를 신분증을 제시하면 2만8000원에 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서비스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손님들처럼 원하는 스타일로 파마를 할 수 있다.
20년간 이곳을 이용했다는 서용례(84) 어르신은 “이곳에서 두 달에 한 번 파마를,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잘라 1년에 총 36만원이 들었는데 이 사업 덕분에 1년에 11만원 가까이 아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 개포동 ‘손짜장’ 역시 매장에 와서 식사를 하면 30％를 깎아주는데 5000원짜리 짜장면을 3500원에 먹을 수 있어 주변 경로당에서 단체로 찾는 경우가 많다. 취지가 좋아 참여했다는 최길동(68) 대표는 “찾아주시는 노인들이 주변에 홍보를 해주고 단골이 되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그는　“봉사차원에서라도 앞으로 계속 효사랑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경기 수원시도 관내 130여개 업소를 효도업소로 지정해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영등포구처럼 음식점, 미용실, 목욕탕, 안경점 등 업종이 다양하고 업소 자율에 따라 혜택(20~50%)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밖에 울산, 광주 등에서도 유사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어르신 할인제도는 점차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