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경기 양평군 단석1리에 마련된 비닐하우스에선 10여명의 노인들이 부추 재배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수십 년간 농사일을 하다 체력 문제로 남에게 논을 맡기고 은퇴를 한 상황. 하지만 김경희(72) 어르신을 비롯한 노인들은 이날 숙련된 농부답게 부추 수확부터 이를 묶는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해냈다.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농촌마을 공동농장’을 통해 현업으로 복귀한 것이다. 김경희 어르신은 “원하는 날만 나와 쉬엄쉬엄 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농촌마을 공동농장’이 농촌 노인들의 맞춤형 노인일자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한 농촌마을 공동농장에서 어르신들이 부추를 재배하는 모습.

공동부지에 하우스 만들어 특산품 재배… 하루 5만원 소득
농촌 어르신들 “평생 하던 일 쉬엄쉬엄 하며 용돈 벌어요”

경기도에서 추진 중인 ‘농촌마을 공동농장’(이하 공동농장)이 도시 노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인일자리를 접하기 어려웠던 농촌 노인들에 대한 노인일자리로 주목받고 있다. 공동농장은 경기도농업기술원(이하 경기농기원)이 마을 공동의 부지나 텃밭에 농작물 생산기반과 공동생활 공간을 조성해 농작물을 생산·재배·판매하도록 노인인력을 활용하는 지원사업이다.
지난해 처음 시범사업으로 여주와 양평에 공동농장을 각각 설립하고 총 4억원을 지원한 바 있는데 성과가 좋아 올해는 지원금을 10억원으로 확대해 평택과 안성·양주·양평·가평 등 5개 지역에 공동농장을 확대 추진한다.
현재 농촌 지역은 도시보다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기농기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경기도내 농가들의 고령화율은 32.3%에 달하는데 이는 도시보다 3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노인일자리가 도시에 몰려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당해 왔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된 공동농장은 평생 농사일을 해온 농촌 노인들에게 최적화돼 있어 주목받고 있다. 또 구조적으로 하루종일 일할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공동 식사는 물론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함으로써 복지 차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더불어 농가 소득 향상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를 위해 경기농기원은 공동농장 설립지역에 2억원을 투입해 작물을 재배할 부지를 확보하고 비닐하우스, 노지 등의 공동생산시설과 작업장, 휴게공간을 조성해 공동식생활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전담관리인력을 둬 공동농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농산물 브랜드 개발, 포장재 제작, 노인활력증진 교육 등 다양한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4600만원의 매출을 올린 양평군 단석1리의 경우 5940㎡(1800평)의 땅을 임대한 부추 재배 하우스 11동을 조성했다. 부추는 한번 심어놓으면 5년 동안 수확이 가능한 작물로 양평군 특화작목으로 지정됐다. 이 농장에서 생산된 부추는 벌써부터 상품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우스 한 동에는 공동 작업장 시설을 갖췄다. 부추 단을 묶는 자동화기계와 높이를 낮춘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구분된 작업대가 있고 공동 취사 급식시설과 쉴 수 있는 휴게실도 마련했다. 작업의 능률보단 능력에 따라 알맞게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직 겨울이라 본격적인 부추 수확 작업이 이뤄지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부추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추까지 수집해 단 묶기 대행작업으로 소득을 올릴 예정이다. 하루 5시간 일하고 1인당 5만원 가량을 손에 쥘 수 있어 소득도 짭짤한 편이다.
양평군 공동농장을 이끌고 있는 김낙관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쉬엄쉬엄 일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양평군과 함께 사업을 실시한 여주시 산북면 용담리도 역시 비닐하우스를 조성한 후 24명의 어르신을 고용해 딸기, 고구마, 도라지 등 지역 특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역축제인 ‘산북양자산 품실축제’와 연계, 농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했고 14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 점차적으로 마을 부지를 확보해 하우스를 늘려 장기적인 수익 창출도 노리고 있다.
최민철 이장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던 노인들이 즐기면서 일해 마을 분위기도 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추가적으로 개설하는 공동농장도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점차적으로 경기 전 지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농기원 관계자는 “노후생활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농촌마을 공동농장 조성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 보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