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이틀 앞둔 4월 29일 경북 문경시 한 딸기농장에선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3대(代)로 구성된 10여 가구가 한데 모여 딸기 수확 체험을 한 것이다. 명절이 아니면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이들이 한데 모인 이유는 경북도가 시행하고 있는 ‘할매할배의 날’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최계순 어르신은 “평소 손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서먹서먹했는데, 오늘 딸기농장 체험을 통해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 2014년부터 경북도가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실시하는 할매할배의 날이 노인문제, 청소년문제, 가정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접근해 해결하고, 조부모 중심의 가족공동체 회복에 큰 효과를 보이면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열린 할매할배의날 2주년 기념식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아이를 안아 올리며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할매할배의날’엔 손자녀가 조부모 찾아봬… 3대 간 소통의 기회로
노인고독감 해소, 인성교육 효과 커… 교육부 인성교육계획에 포함
“매년 10월 마지막토요일을 국가기념일로”… 국민 10명 중 8명 공감

독거노인 수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전통적 가족 형태가 해체되는 가운데 ‘할매할배의 날’이 흩어진 가족애를 찾는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가족공동체의 복원과 손자녀 인성교육에 큰 효과를 보이고 있는 할매할배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해체로 인해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급속한 노령화와 핵가족화로 노인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자살자가 10만명당 82명에 달하는데 이는 먼저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보다 4.7배 높고 OECD국가 중 1위에 해당한다. 노인빈곤율 역시 44.7%로 OECD 평균(11.4%)의 4배나 된다.
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청소년 학교폭력 문제만 전국적으로 하루에 60여건씩 발생하고 부모를 살해하거나 폭행하는 등 매년 1만건에 가까운 패륜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이 ‘할매할배의 날’이다. 할매할배의 날이란 경북도가 조부모 중심의 가족공동체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진행하는 기념일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조부모의 날’과 성격이 같다. 할매할배의 날에는 경북도 관내 시군구별로 손주들이 조부모를 찾아가 삶의 지혜를 배우고 3대가 모여 가족애를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효과로 인해 일본,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서는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로 치뤄지는 노인의 날과 노인세대부터 손자녀세대가 함께 교류하는 조부모의 날을 함께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고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로 제정된 ‘노인의 날’이 1년에 한 번 섬기는 것과 달리 할매할배의 날은 매달 한 번씩 조부모와 손자녀가 만남을 갖고 조부모를 중심으로 3대가 소통하고 화합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안동시의 ‘1박2일 가족캠프’, 성주군의 ‘할매할배 그리기 공모전’, 칠곡군의 ‘할매할배 인생강연 100℃’ 등 시군별로 특화된 행사를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노인·청소년·가정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높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경북행복재단이 발표한 ‘할매할배의 날 활성화를 위한 도민의식조사 연구’에 따르면 할매할배의 날이 외로움 해소와 자아존중감 향상에 큰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2명 중 1명(52.3%)은 외로움을 극복하고 건강유지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고무적인 것은 가족관계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말한 응답자가 3명 중 2명(조부모세대 64.8%, 부모세대 66.3%)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할매할배의 날은 노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청소년 인성 교육 등 가정 문제 해결사로 노인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해 할매할배의 날 성과를 바탕으로 이를 전국에 확산시키고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 비전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조부모·부모·손자녀세대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8명이 할매할배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데 찬성했다. 특히 조부모세대(71.7%)보다 손자녀세대(91.6%)가 더 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증명하듯 할매할배의 날의 효과는 교육 현장에도 반영됐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된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앞으로 할매할배의 날을 국민정신운동으로 발전시켜 새마을운동처럼 경북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디딤돌로 만들어 가겠다”고 천명했다.
경북도는 매년 10월 마지막 토요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전국으로 확산시킨다는 방침 아래 정부에 이를 공식 제안한 상태다. 국가기념일이 되면 주관부처가 정해지고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관련 행사를 전국적인 범위로 확대할 수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성과를 바탕으로 할매할배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보건복지부에 공식 건의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할매할배의 날의 큰 성과로 인해 노인의 날과 조부모의 날을 동시에 운영하는 선진국의 사례처럼 국내에도 할매할배의 날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은 “노인의 정서적·물리적 고립을 해결하고 청소년의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으로 나타난 할매할배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